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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/생활 개선

슬기로운 여가 생활

윈터 원더 2020. 6. 1. 01:54

부정적인 감정을 이끄는 마이너스 투자

에드바르 뭉크, 절규, 1893년

다른 누군가와 영화를 볼 때면 어떤 영화를 볼까 서로 의견을 맞춘다. 그러나 언젠가 부터 나는 공포영화 장르는 아예 배제하는 편이 되고, 다른 영화나 소설은 단순히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어야만 시작하게 되었다. (그렇다. 내게 이야기는 권선징악이 제일이다.)

이유는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 그 시간 동안의 내 인생의 시간과 경제적 투자를 받고, 또한 나의 몰입까지 더해 얻는 것이 결국 나의 분노와 슬픔, 괴로움, 두려움과 같은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이라면, 이는 실로 마이너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.

 

누군가는 내게 유치하다 말 할수도 있을 것이다. 당연히 어른이라면 인생의 단, 짠, 신, 쓴 맛을 모두 느껴봐야 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. 하지만 스크린 밖에서, 책 밖에서 진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러한 예측하지 못하고 반갑지 않는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일들은 충분히 넘쳐나고 있다. 뉴스만 보아도 그렇다. 마조히스트가 아니면 그런 감정적 결론에 자신이 도달할 걸 알면서도 자진해 들어가진 않는다.

 

이제야 세상에 말하건대 난 내 사춘기 때, 슬픔이란 감정에 나도 모르게 취해 있었다고 고백한다. 그 시절의 나는 학교, 친구, 가족, 그리고 세상이 던지는 많은 변화구에 멍들곤 했다. 내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일기장에 나의 슬픔을 토해내기도 했었다. 때론 음악을 듣다가 나를 힘들게 했던 과거사를 떠올리며 '아- 어쩜 이렇게 내 이야기 같을까' 하며 동조해 내게 그러한 감정을 다시 불러 일으킨 곡들을 몇 날 며칠동안 반복해 듣기도 했다.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흐릴까 세상을 원망했다.

 

이러한 행동은 내 자신에게 희생자란 이름표를 달고 세상을 원망할수 있는 정당성을 느끼게 주었다. 또한 내 감정의 책임을 세상에 전가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수동적이어야 하는 입장으로 바꾸어 놓았다. 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 내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보다 훨씬 하기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.

긍정적인 감정을 이끄는 플러스 투자

구스타프 클림트, 키스 

다시 여가시간의 활용으로 되돌아 가보자.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실로 방대한 자료와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. 우리가 찾고만 싶다면 이 세상의 아름답고, 즐겁고, 흥미롭고, 유익하고 감동적인 것들은 주위에 넘쳐난다. 유익하고 즐거운 감정을 줄수 있는 여가 선택에 질려서 슬픔에 한번 빠져보고 싶다면, 차라리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클리셰 범벅이라도 좋으니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수 있는 이야기를 추천한다. 좋은 단짠 단짠의 조합이 될 수 있다.

 

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모두 섭렵했는가?

아니다.

그렇다면 우리가 이 생을 다할때까지 그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?

아니다.

 

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의 투자를 보다 즐겁고, 흥미롭고, 유익하고 감동적인 것들로 채우고 싶다.

그리고 감정 여가 투자의 메뉴에서 모두에게 단짠 단짠의 최적 조합. 초딩 입맛에 맞는 유치뽕짝 권선징악을 추천한다.

이 취향만큼은 굳이 어른스럽지 않아도 만족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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